얼마 전, 방과 후 교무실에 남아있던 한 제자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주말에 친구들이 다 같이 영화 보고 방탈출 카페에 가기로 했는데, 저는 핑계를 대고 빠졌어요. 집에 용돈 달라고 말씀드리기가 너무 죄송해서요." 조심스레 가정 형편(기초생활수급)을 알고 있었던 터라 제 마음도 무거워졌습니다. 저는 즉시 제자를 앉혀두고 물었습니다. "너 혹시 '문화누리카드'라고 들어봤니? 이건 국가가 너에게 주는 13만 원짜리 '문화 배당금'이야. 네가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쌓는 경험은 장차 수천만 원의 가치로 돌아올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이란다. 당장 혜택을 찾아 쓰자." 저소득층의 문화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문화누리카드는, 경제수학의 관점에..
내년 봄, 아내와 함께 10일 정도 일정으로 스페인 여행을 떠나기 위해 최근 항공권과 숙소를 틈틈이 알아보고 있습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며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저와 아내의 '여권 만료일'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여권의 만료일이 딱 5개월 남아 있더군요. 대부분의 국가는 입국 시 '여권 잔여 유효기간 6개월 이상'을 필수로 요구합니다. 만약 이 사실을 출국 직전에 알게 되었다면, 비싼 긴급 여권을 발급받거나 최악의 경우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엄청난 금전적 손실(리스크)을 감수해야 합니다. 평일에는 학생들 가르치랴 퇴근하면 집으로 돌아가기 바쁜 직장인에게, 구청 여권과를 방문하기 위해 반차를 내는 것은 '시간적 비용(Time Cost)'이 너무 큽니다..
안녕하세요. 현직에서 수학과 경제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얼마 전, 대학을 졸업하고 드디어 첫 독립을 하게 된 제자가 이삿짐을 나르다 말고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선생님! 저 드디어 전셋집 구해서 이사 중이에요. 짐 정리가 며칠 걸릴 것 같은데, 주민센터는 다음 주쯤 천천히 가서 전입신고해도 되겠죠?" 저는 즉시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절대 안 된다. 지금 당장 이삿짐 박스 내려놓고 스마트폰부터 켜라. 너의 전세 보증금 수천만 원은 '전 재산(원금)'이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그 원금을 지키는 유일한 '헤징(Hedging, 위험회피)' 수단이야. 하루를 미루면 전 재산이 날아갈 확률 변수를 스스로 키우는 꼴이란다." 많은 사회초년생들이 뼈 빠지게 모은 보증금을 계약서 한 장으로 안..
안녕하세요. 현직에서 수학과 경제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몇 년 전, 주말에 급하게 이사할 집의 전세 계약을 맺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부동산 소장님께서 "선생님, 오늘 계약서 쓰시려면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가 지금 바로 필요합니다"라고 하시더군요. 토요일이라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는 문을 닫았고, 설상가상으로 제 노트북은 고장이 난 상태였습니다. 당황할 법한 상황이었지만, 저는 미소를 지으며 부동산 건물 바로 앞 지하철역에 있는 '무인민원발급기'로 향했습니다. 단 3분 만에 서류를 모두 떼어 무사히 계약을 마칠 수 있었죠. 경제수학에서 시간은 곧 비용(Cost)입니다. 평일 낮에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며 동사무소에 다녀오는 '기회비용'을 0원으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창구 발급 대비 수수..
안녕하세요. 현직에서 수학과 경제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얼마 전, 같은 교무실을 쓰는 동료 선생님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출근하셨습니다. 출근길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잠깐의 방심으로 속도위반 카메라에 찍혔는데, 스쿨존 위반은 벌점이 무려 30점이나 부과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전에 신호위반으로 받은 벌점 15점이 아직 남아있는데, 합치면 45점이라 면허 정지(40점 기준)를 당할까 봐 너무 두렵다"며 발을 동동 구르셨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혹시 작년에 '착한 운전 마일리지' 신청해 두셨나요?"라고 묻자, 그게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다. 만약 이 마일리지를 미리 신청해 두셨다면, 클릭 한 번으로 모아둔 점수를 차감하여 면허 정지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
안녕하세요. 현직에서 수학과 경제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작년 겨울, 저희 아버님께서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한 달 가까이 대학병원에 입원하시며 큰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퇴원 수속을 밟으며 받아 든 영수증에는 수백만 원의 병원비가 찍혀 있었고, 가족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영수증을 보며 속으로 '최악의 재무적 타격은 피했다'며 안도했습니다. 바로 건강보험의 '본인부담상한제'라는 훌륭한 수학적 방어 시스템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에서 보험의 본질은 '일어날 확률은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파산에 이를 수 있는 거대한 리스크(위험)를 헷징(방어)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이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국민 각자의 소득 수준에 맞춰 '1년에 낼 수 있는 병원비의..